<위버멘쉬> 북 리뷰 - 프리드리히 니체의 살아있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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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북 리뷰 - 프리드리히 니체의 살아있는 철학

by 일상힐러 2025.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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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위버멘쉬』는 니체가 주장한 ‘초인(Übermensch)’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위버멘쉬란 기존의 도덕과 사회적 관습을 그대로 따르는 대신, 자신의 의지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는 외부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모든 고통과 시련을 넘어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이 책은 니체의 대표작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Human, All Too Human)』을 기반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한 고민과 삶의 문제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단순한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니체의 날카로운 사상을 현대적 언어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자기 극복, 인간관계, 감정 조절, 삶을 대하는 태도 등 현실적인 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루며, 독자들에게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운다."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이 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세상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할 준비가 되었는가?『위버멘쉬』를 통해 자신을 뛰어넘는 길을 찾기를 희망한다.
저자
프리드리히 니체
출판
떠오름(RISE)
출판일
2025.03.14
니체는 우리에게 불편하지만 강력한 진실을 던져주는 철학자입니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따르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 안에 잠재된 힘을 깨워 스스로의 삶을 적극적으로 창조해 나갈 것을 요구하는 니체의 <위버멘쉬>는 그의 철학의 정수이자 가장 논쟁적인 지점 중 하나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lt;위버멘쉬&gt; 북 리뷰

 

인간 너머를 향한 뼈아픈 부르짖음

 

니체가 제시한 위버멘쉬는 단순히 초인이라는 번역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심오한 의미를 지니며, 그의 대표작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개념은 단순히 강인한 육체나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를 넘어, 기존의 가치 체계를 전복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제시합니다.

 

니체가 위버멘쉬를 외친 배경에는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하던 기독교적 도덕관과 허무주의 팽배가 있었습니다. 그는 신의 죽음을 선언하며, 인간이 더 이상 신이나 초월적인 존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위버멘쉬는 기존의 노예 도덕, 즉 나약하고 복종적인 인간상이 아닌, 자신의 의지를 통해 삶을 긍정하고 강력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인간 유형을 의미합니다. 위버멘쉬는 연약함을 긍정하고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는 존재가 아니라, 고통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자기 극복의 아이콘입니다.

 

&lt;위버멘쉬&gt; 영원한 되어감
영원한 '되어감'

 

니체는 위버멘쉬가 결코 특정 소수에게만 허락된 특권적인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모든 인간이 위버멘쉬로 나아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 즉 '권력에의 의지'를 발현하는 것입니다. 권력에의 의지는 단순히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어서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는 생명력의 근원적인 충동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위버멘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재평가하고 재창조하는 과정 속에 있는 존재이며, 결코 완성된 형태가 아닌, 영원한 '되어감' 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위버멘쉬 개념을 접하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용기"였습니다. 기존의 가치와 도덕이 무너진 허무주의의 시대에, 그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재구성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편안함과 안정감을 추구하며, 익숙한 것들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니체는 이런 안락함을 비판하며, 인간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미지의 영역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위버멘쉬는 바로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의 신념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고독한 존재들입니다.

 

&lt;위버멘쉬&gt; 용기
용기

 

 

 

위버멘쉬 개념은 오해의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습니다. 특히 20세기 초, 나치 독일이 니체 철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우월한 인종의 지배를 정당화하는데 악용한 사례는 위버멘쉬가 얼마나 위험하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은 니체 본연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니체는 특정 인종이나 계급의 우월성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자기 극복을 통해 위대한 존재로 나아가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철학은 타인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스스로의 삶을 예술작품처럼 창조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lt;위번멘쉬&gt; 자신의 삶의 주인
자신의 삶의 주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버멘쉬는 여전히 불편한 진실을 안고 있습니다. 위버멘쉬가 되기 위해서는 나약하고 비겁한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고통과 상처, 실패는 인간의 불가피한 부분입니다. 니체는 이런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하려는 의지를 강조합니다. 그것을 통해 더욱 강해질 것을 주문하며,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그의 명언처럼, 위버멘쉬는 고통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존재입니다.

 

니체의 위버멘쉬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특정한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강요합니다. 미디어와 소셜미디어는 완벽한 것처럼 보이는 타인의 삶을 끊임없이 보여주며, 우리는 알게 모르게 비교하고 좌절합니다. 이런 시대에 니체의 위버멘쉬는 우리에게 "너 자신의 주인이 되어라."라고 외치는 듯합니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대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정립하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용기를 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lt;위버멘쉬&gt;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존재
비교하고 좌절하는 인간

 

 

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 의미를 찾기도 합니다. 니체의 위버멘쉬는 자칫 고독하고 냉혈한 존재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의 고독은 단순한 고립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을 구걸하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에서 힘을 길러내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고독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독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자기 초월이 가능해집니다.

 

&lt;위버멘쉬&gt;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
사회적 동물

 

&lt;위버멘쉬&gt; 스스로 찾는 자율적인 고독
자율적 고독

 

 

저는 위버멘쉬의 사상을 접하며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나는 나의 삶의 주인이었는가? 나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대에 얼마나 얽매여 있었는가? 결론적으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멘쉬는 단순한 철학적 개념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물음, 즉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니체의 답변입니다. 신이 죽은 시대에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고 자기 극복을 통해 위대한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는 그의 외침은 1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강한 울림을 줍니다. 

 

 

&lt;위버멘쉬&gt; 프리드리히 니체
프리드리히 니체

 

 

<위버멘쉬>는 우리에게 나약함을 인정하되, 그 안에 머무르지 말고,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고, 삶의 모든 순간을 긍정하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완성해 나가라는 뼈아픈 부르짖음입니다. 이 부르짖음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어쩌면 위버멘쉬를 향한 첫걸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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