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박스: 바르셀로나> <버드 박스>의 스페인 확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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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버드 박스: 바르셀로나> <버드 박스>의 스페인 확장판

by 일상힐러 2023.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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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 블록 주연  <버드 박스>의 스페인 버전 확장판이 넷플릭스에 스트리밍 중입니다. <버드 박스>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은 기존의 설정들에서 눈을 뜬 채 미지의 존재들을 보아도 죽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버드 박스>에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 존재들을 보게 만들어 결국 죽게 만드는 악한들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이 <버드 박스:바르셀로나>의 주인공은 바로 그 미지의 존재들을 보고도 죽지 않는 '보는 자들' 중 의 한 사람입니다.

 

세바스티안

 

마리오 카사스가 연기하는 세바스티안은 어린딸과 다니며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좀 당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세바스티안과 딸은 <버드 박스>의 산드라 블록과 그녀가 지키고 보호하는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의 존재들입니다. 무리를 지어 서로를 도우며 생존하는 사람들에게 발전기가 있는 곳을 안다면서 접근해 결국 미지의 존재들을 보게 만드는 세바스티안. 딸은 그런 아빠에게 계속 동기부여를 하는 존재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잔인한 행각이 보는 시청자들에게 고구마를 100개 먹는 것 같은 답답함과 분노를 유발하기에, 혼란을 느끼는 시청자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세바스티안에게는 죽는 사람들에게서 빠져나가는 영혼들이 화려하게 빛나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소피아

 

소피아는 어머니와 둘이 여행을 왔다가 혼란 속에 어머니와 헤어지게 되고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어린 독일인 소녀입니다. 바로 안전지대라고 들은 성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짓말이 들통 나 무리 사람들이 세바스티안을 내쫓으려는 순간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세바스티안이 무리에 남아 있으려고 이용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을 밖으로 유인해 내 존재들을 보게 하자는 딸의 속삭임에 기회를 엿보는 세바스티안. 공교롭게도 소피아에게 안전지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무리의 사람들은 그곳으로 향하기로 합니다. 

 

세바스티안의 서사

 

사실 세바스티안의 딸은 이미 '보는자들'의 우두머리인 신부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했고 세바스티안은 그때  '보는 자들' 중 한 명이 된 것입니다. 그의 곁에 머물며 계속 세바스티안을 행동하게 하는 딸은 미지의 존재 중 하나로 보입니다. 이 영화의 한 장면 중 대학에서 양자물리학을 전공한 한 청년이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미지의 존재들은 사람들에게 각자 의미 있는 지인의 목소리로 심리적으로 괴롭히거나 눈가리개를 벗고 자해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이 미지의 존재들이 각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형상화하는 물질이자 에너지라는 것입니다. 나름 설득력 있는 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세바스티안은 어린 딸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그 슬픔으로 '보는 자'가 된 것 같습니다.

 

안전지대

 

소피아와 클레어가 도달한 안전지대에서는 헤어진 어머니가 살아남아 소피아와 재회하게 됩니다. 그곳에서는 군인들이 실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미지의 존재들을 보아도 죽지 않는 '보는자들'에게서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나 분노, 슬픔 등 격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미지의 존재를 보았을 때 죽지 않고 '보는 자들'이 되는 것 같다고 누군가 말하면서 실험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똑같은 현실인데도 <버드 박스>보다 안전지대가 왠지 그다지 평화로워 보이지도 않고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군인들의 존재 때문일까요.

 

<버드 박스> 시리즈의 시작일까

 

<버드 박스>는 산드라 블록의 연기와 존 말코비치의 뛰어난 연출과 연기로 긴장감과 몰입도가 매우 높았던 영화였습니다. <버드 박스>라는 제목은 미지의 존재들이 다가올 때 새들이 가장 먼저 감지하고 강렬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새들이 든 새장을 감지기처럼 사용하는 모습에서 왔습니다. 산드라 블록이 두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데서 세상에 대한 절망과 언제 삶이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의 쉼터가 안전지대로, 그곳에 도달한 산드라 블록이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은 희망을 상징하며, 시각장애인들이 도리어 가장 안전해진 뒤바뀐 세상의 아이러니도 보여줍니다. 

 

스핀오프인 <버드 박스: 바르셀로나>의 세바스티안이 왜 하필 '보는자'일까 생각해 보면, 설정이 그렇지 않았다면 배우만 바뀌고 내용은 그대로인 <버드박스>의 단순한 반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세바스티안이 '보는 자'로, 사람들이 미지의 존재를 보도록 만드는 것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존재가 주는 그런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소피아와 클레어를 위해 희생하는 것으로 이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세계 여러 도시의 확장판을 만든다면 이보다 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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